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신동원 소장(과학학과 명예교수)이 (재)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가 주는 인촌상(인문·사회 부문)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지난 8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올해 40회를 맞은 올해 인촌상은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등 4개 부문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인물에 대해 부문별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가 4명씩 참여해 3개월간 면밀한 심사를 진행했다. 부문별 1억 원의 상금과 상장 및 메달이 주어진다.
신 소장은 한국 전통과학과 의학사의 성취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세계 과학문명사 흐름 속에서 재조명해 온 대표 연구자다. 특히 한국의 과학기술이 근대 이후 급성장한 분야에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 축적된 지식과 기술의 역사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자료와 연구로 입증해 왔다.
신 소장은 “한국 과학사와 의학사를 정리해 온 지난 세월이 사회적으로 평가받은 것 같아 영광스럽다”며 “인문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고 생각해 온 인촌상의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무척 놀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한국 전통의학의 대표 고전인 ‘동의보감’을 동아시아 의학사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며 학문적 의미를 확장했다. 또한 천연두와 콜레라 등 질병을 단순한 의학적 현상이 아니라 민중의 삶과 사회적 인식 속에서 살피는 ‘병의 일상개념사’ 연구를 선도하며 한국 의학사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
신 소장의 대표적 성과는 2022년 완간된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다. 2010년부터 12년에 걸쳐 추진된 이 사업에는 신 소장을 비롯한 기획위원과 각 분야 연구자 60여 명이 참여해 의학·천문학·수학·농업·지리·종교·금속문명·산업화·도시건축 등 한국 과학문명의 흐름을 총 30권에 담아냈다.
이 총서는 과학기술의 성취를 나열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과학이 당대 사람들의 생활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폭넓게 조명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니덤동아시아과학사연구소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 중국 자연과학연구소의 ‘중국과학기술사’에 이은 세계 세 번째 과학문명사 총서로 평가받는다.
발간 당시 크리스토퍼 컬런 니덤동아시아과학사연구소장은 이 총서에 대해 “세계인들이 한국의 과학과 문화,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한국이 평화로운 나라라는 것을 알리는 소프트웨어가 될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현재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을 통해 총서 1차분 5권의 영문판 출간도 앞두고 있다. 신 소장은 “출간을 앞둔 케임브리지 총서 5권에도 중요한 내용이 담겼지만, 한국 과학문명의 전체상을 담기에는 아쉬움이 있다”며 “추가 계약을 통해 우리 과학의 우수성을 충분히 담아낸 총 10권의 영문판 총서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신 소장은 국수적 민족주의나 근대 중심주의에 기대지 않고, 한국 전통과학의 독자적 가치를 세계 과학사의 맥락에서 규명해 왔다. 이러한 학문적 태도는 한국 과학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한편, 전통 지식이 오늘날 과학과 인문학의 대화 속에서 새롭게 읽힐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에는 한국 전통과학사 연구와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편찬 공로를 인정받아 제9회 암곡학술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으로도 선정됐다.
신 소장은 “총서는 권위 있는 해석을 집약해 오래 남기고, 다음 세대 연구의 출발점이 되게 하는 작업”이라며 “후배 연구자들이 한국 과학문명의 가치를 더욱 널리 알릴 후속 총서를 펴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