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이지 않고 원유 걸러내는 ‘분자 정유’ 시대 열렸다… 100년 묵은 정유 공정 패러다임 전환
– KAIST 고동연 교수팀 연구 성과, 상온에서 원유 거르는 차세대 분리막 개발
– 기존 ‘증류’ 공정 대비 에너지 31.6% 절감, 이산화탄소 배출량 37.6% 감축 효과 입증
– 산업계 난제였던 선택층 코팅 한계 극복,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네이처(Nature)’ 게재
【관련 국정과제】 27. 기초연구 생태계 조성과 과학기술 인재강국 실현
국내 연구진이 100여 년간 지속된 ‘끓여서 나누는’ 정유 공정의 상식을 뒤엎는, 상온에서 원유를 걸러내는 차세대 분리막 기술을 개발하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 배경훈, 이하 ‘과기정통부’)는 한국과학기술원(이하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고동연 교수 연구팀이 원유를 끓이지 않고 값싼 고분자 막만으로 상온에서 정밀하게 걸러 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지원 사업(개인기초연구(우수신진연구) 및 선도연구센터(ERC))으로 수행한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인 「네이처(Nature)」에 6월 25일(목) 자정(현지시간 6.24.(수) 16시, 런던 현지 시간)에 게재되었다.
* 논문명 : Crude Oil Fractionation by Means of Mesoporous Polyacrylonitrile Membranes
최근 국제 정세 변화에 따른 유가 변동이 장바구니 물가 전반을 위협하는 핵심 요인으로 꼽히는 가운데, 그 바탕에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원유를 350℃ 이상으로 펄펄 끓여온 고에너지 소비형 정유 공정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 정유 공장이 원유를 끓였다가 식히는 ‘증류’ 방식에 의존하며 소비하는 에너지는 연간 1,100TWh(테라와트시)*에 달하며, 국내 정유·석유화학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역시 국가 전체 배출량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의 공급 과잉과 원가 경쟁력 심화까지 겹치면서, 기존의 고에너지 소비형 구조를 근본적 체질 개선 없이는 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 TWh(테라와트시): 전력량의 단위로, 1TWh는 10억 kWh에 해당하며, 1,100 TWh는 1GW급 대형 원자력 발전소 약 130기가 1년 내내 쉬지 않고 생산해야 하는 막대한 에너지 규모
이러한 상황에서, 학계는 원유를 끓이지 않고 분리막으로 걸러내기 위한 연구에 주목해 왔다. 다만, 분자 단위의 초정밀 분리를 구현하려면 분리막 표면에 머리카락 두께보다 훨씬 얇은 ‘선택층*’을 반드시 코팅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상식이었다. 그러나 선택층을 도입하면 소재 개발과 코팅 공정이 추가되어 제조 비용이 높아지고, 면적이 커질수록 코팅 결함이 생기기 쉬워 산업 규모로 확장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 선택층(Selective Layer): 분리막에서 실제로 물질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핵심 기능층
연구팀은 이 상식을 완전히 뒤집고, 분리막에 아무런 코팅을 하지 않은 값싼 다공성 고분자(PAN) 막에 원유를 그대로 흘려보내는 파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그 결과 원유 속의 무거운 기름 성분들이 분리막 내부의 미세한 구멍에 스스로 들러붙으며, 머리카락 굵기의 5만분의 1 크기인 2나노미터(nm) 이하의 정교한 미세 통로를 자발적으로 형성했다. 복합 혼합물인 원유가 분리막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맞춤형 ‘체’를 완성한 것이다.
이 체에 있는 통로를 통해 가벼운 나프타, 휘발유, 등유 성분만 빠르게 분리되었고 무거운 찌꺼기는 사실상 완전히 걸러졌다. 통상 분리막 표면에 기름 성분이 들러붙는 현상은 성능을 망치는 ‘오염(파울링)’으로 여겨져 왔지만, 연구팀은 이를 역으로 활용해 분리 통로를 만드는 도구로 전환시켰다. 이 방식은 기존에 보고된 최고 수준의 원유 분리막 대비 23배나 빠른 분리 속도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28일간 원유 분리를 지속해도 성능 저하가 없는 뛰어난 안정성을 입증했다.
이 기술의 가장 큰 산업적 매력은 막대한 설비 교체 비용 없이 기존 정유 공장의 배관 시스템에 필터 모듈을 추가하는 형태로 즉시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원유를 이 분리막에 통과시켜 나프타, 휘발유 등을 먼저 분리하고 남은 성분만 기존 증류탑에서 증류할 경우, 처음부터 증류하는 경우보다 에너지는 31.6%,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7.6%를 감축할 수 있으며 운영비 또한 36% 절감된다.
이를 국내 정유·석유화학 전반에 확대 적용하면 연간 약 1,000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으며, 이는 승용차 400만 대가 1년 동안 내뿜는 탄소량과 대등한 수준이다. 또한 원유 분리에 머무르지 않고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정제, 배터리 용매 회수, 의약품 정제 등 다양한 정밀 화학 공정으로 확장이 가능하여, 그동안 해외 기술에 의존하던 분리 공정을 독자적인 국산 ‘분자 정유’ 플랫폼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KAIST 고동연 교수는 “이번 연구는 분리막이 혼합물과 만나 스스로 최적의 분리 통로를 빚어낸다는 새로운 과학적 원리를 규명해낸 성과”라며, “특히, 실제 원유를 공급해 준 HD현대오일뱅크와 긴밀하게 협력한 덕분에 실험실을 넘어 산업 현실에 맞닿은 수준까지 검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동 교신저자인 KAIST 이재우 교수는 “향후 국내 정유·석유화학 공정 곳곳에 끼워 넣을 수 있는 대면적 모듈화 기술과 장기 운전 기술을 완성해 100년간 증류가 지배해 온 정유 산업을 분리막 공정으로 전환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제1저자인 KAIST 최지훈·서혁준 박사는 “이번에 발견한 자발적 기공 수축 현상을 자유롭게 제어해 정유 공정 전반을 막 분리 기술로 대체하는 것이 목표”라며, “원유뿐만 아니라 폐플라스틱 재활용, 바이오 연료 정제 등으로 기술을 확장하여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겠다”고 뜻을 전했다.
과기정통부 김성수 연구개발정책실장은 “이번 성과는 정유 공정의 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동시에 낮추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뜻깊은 성과”라며, “앞으로도 기초연구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로 이어지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주요내용 설명 |
<작성 : KAIST 고동연 교수 연구실>
| 논문명 | Crude Oil Fractionation by Means of Mesoporous Polyacrylonitrile Membranes |
| 저널명 | Nature |
| 키워드 | Polyacrylonitrile membrane(폴리아크릴로니트릴 분리막); Crude oil fractionation(원유 분별); Self-limiting pore constriction(자기제한적 기공 수축); Energy-efficient petroleum refining(에너지 절감형 정유 공정) |
| DOI | 10.1038/s41586-026-10677-3 |
| 저 자 | 최지훈 박사(제1저자/KAIST), 서혁준 박사(제1저자/KAIST), 이민용 박사과정생(KAIST), 신웅철 연구원(HD현대오일뱅크), 최재민 석사과정생(KAIST), 최건우 박사(KAIST), 장민준 박사과정생(KAIST), 임성갑 교수(KAIST), 이재우 교수(교신저자/KAIST), 라이언 라이블리 교수(Ryan P. Lively, 교신저자/美조지아공대), 고동연 교수(교신저자/KAIST) |
1. 연구의 필요성
○ 글로벌 원유 정제에 사용되는 상압·감압 증류 공정은 연간 1,100 TWh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1억 6천만 톤 이상의 CO2를 배출하는 등 탄소집약도가 높아, 에너지·환경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안적 분리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 분리막을 활용한 원유 정제는 기존 증류 공정의 에너지·탄소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유망한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으나, 기존에 시도된 고분자 분리막 소재*를 활용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 N-Aryl linked spirocyclic polymer, Polytrizaole, Polyamide 등
○ 그러나 기존 고분자 분리막은 원유 투과도가 0.1 L·m-2·h-1·bar-1* 이하에 머물러, 산업적 실용화를 위해 요구되는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물질전달 속도를 보인다.
* L·m-2·h-1·bar-1 : 1제곱미터 넓이의 분리막에, 1시간동안, 1기압의 압력을 가할 때 투과되는 액체의 부피(리터)
○ 이러한 성능 한계의 근본 원인으로, 그동안 기존 연구는 얇은 선택층(selective layer)의 화학적 특성에만 집중해 왔으나, 역할이 체계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즉, 분자 수준 분리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통상 믿어왔던 다공성 지지층이 원유 분리 성능에 미치는 영향은 체계적으로 규명되지 않아 분리막 구조-성능 간 근본적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다.
2. 연구내용
○ 기존 연구에서 단순 받침대로만 쓰이던 값싼 다공성 PAN 분리막에 선택층 코팅 없이 원유를 직접 투과시킨 결과, 원유 속 무거운 기름 성분이 막 내부 기공 벽면에 스스로 들러붙어 머리카락 굵기의 5만분의 1 (2 나노미터 이하)에 해당하는 정교한 통로를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자기제한적 기공 수축 현상(self-limiting pore constriction)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 수천 가지 성분이 혼재하는 복잡한 원유 분리에 적합한 연속 흐름 여과 방식을 채택하여, 아라비안 라이트(AL) 원유 기준 최대 0.591 L·m-2·h-1·bar-1 의 투과도를 달성했다. 이는 기존 문헌 최고치 대비 23배 이상 높은 수치임. 또한, 나프타*(<200℃) 범위 경질 성분 함량을 원유(25.1%)대비 52.0%까지 농축하는 데 성공했다.
* 나프타 : 원유에서 분리되는 가벼운 탄화수소 혼합물로, 플라스틱·합성섬유 등 석유화학 제품의 핵심 원료
○ 깊이별 성분 분석을 통해 침착층의 주성분이 선형 알케인 탄화수소(C17-C33)임을 밝혔으며, 미세 기공 내에서 선형 탄화수소가 깁스-톰슨 효과(Gibbs-Thomson Effect)에 의한 녹는점 강하로 안정화되어 선택적 수송 통로를 유지한다는 메커니즘을 제안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실험적 근거를 확보했다.
○ 28일 연속 가동에도 분리 성능과 투과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됨을 확인하였으며, 공정 모사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존 증류 공정 대비 에너지 31.6%, 냉각수 20.7%, CO2 배출 37.6%, 운영비 36.0% 절감 가능성을 정량적으로 제시했다.
3. 연구성과/기대효과
○ 본 연구는 100년 이상 유지되어 온 증류 기반 정유 패러다임에 도전하여, 별도의 선택층 코팅 없이 기존에 지지체로만 쓰이던 값싼 다공성 고분자 막만으로 원유와 같은 초복잡 혼합물의 분자 수준 정제가 가능함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이는 선택층이 필수라는 분리막 분야의 기존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는 성과로 평가된다.
○ 기존 정유 설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분리막 모듈만 추가하는 방식으로 즉시 적용(드롭인) 가능하며, 국내 정유·석유화학 산업 전체에 확대 적용한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약 1,000만 톤 규모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승용차 약 400만 대의 연간 배출량에 해당한다.
○ 원유 분별 외에도 나프타·방향족 분리, 폐플라스틱 재활용, 배터리 소재·의약품 생산 공정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의 응용이 가능하며, 국산 분자 정유 플랫폼 기술로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다.
| 그림 설명 |
(그림1) 선택층 없이 원유를 거르는 상온 분리막 – 스스로 만들어진 나노 통로로 에너지·탄소를 줄인다
상온에서 가압한 원유를 다공성 PAN 분리막에 흘려보내 휘발유·나프타·등유 등 가벼운 성분만 걸러내는 공정 모식도.
별도의 선택층 코팅 없이도 원유 속 무겁고 끈적한 성분이 기공 벽에 스스로 들러붙어 안정화되며 2nm 이하의 통로를 자발적으로 형성하고, 28일(4주) 연속 운전에도 성능이 유지된다. 공정 모사 결과, 기존 증류 대비 에너지 31.6%·이산화탄소 37.6%를 절감해 지속 가능한 원유 정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림설명 및 그림제공 : KAIST 고동연 교수
(그림2) 상온 PAN 분리막의 원유 정제 성능 – 경질 유분 농축과 28일 장기 운전 안정성
짙은 색의 원유 두 종(아라비안 엑스트라 라이트(AXL), 아라비안 라이트(AL))이 PAN 분리막을 거치면 맑은 경질 유분으로 바뀐다.
끓는점 분포 분석 결과, 교차흐름(cross-flow) 방식에서 투과액의 200℃ 이하 경질 성분이 원유 원액 대비 크게 증가했고(AXL: 34.8→61.5%, AL: 25.1→52.0%), C20 이상의 무거운 성분은 효과적으로 걸러졌다. 또한 상용 분리막과 달리 PAN 분리막은 28일 연속 운전에도 투과 성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우수한 내구성을 입증했다.
| 연구 이야기 |
<작성 : KAIST 최지훈 박사, 고동연 교수>
□ 연구를 시작한 계기나 배경은?
| 저희 연구팀은 오랫동안 <증류를 대체할 분리 기술>에 매달려 왔습니다. 화학 산업 전반에서 쓰이는 유기용매 분리막을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장 큰 표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100년 동안 막대한 에너지와 탄소를 쏟아부으며 끓여서 나눠온 정유 공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분리막 분야의 오랜 상식은 “정밀하게 나누려면 반드시 얇은 선택층을 코팅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원유처럼 수천 가지 성분이 뒤섞인 너무나도 복잡한 혼합물은 분리막이 건드릴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저희는 오히려 그 반대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단순하고 값싼 막에, 가장 복잡한 원유를 그대로 흘려보낸 것이죠. 실험실의 깨끗한 모델 용액과 실제 산업 현장의 시커먼 원유 사이의 간극을 채워보자는 생각이, 이 연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
□ 연구 전개 과정에 대한 소개
| 처음부터 한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원유를 ‘있는 그대로’ 다루자는 것입니다. 많은 해외 연구팀이 다루기 쉽도록 원유를 용매로 희석해 실험하지만, 그렇게 하면 실제 정유 공장의 현실과는 멀어집니다. 저희는 희석하지 않은 원유를 그대로 쓰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거대한 양의 원유 정제 공정을 다뤄야 하는 연구라 실험실에서 일일이 막을 합성해 쓰기가 현실적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시중에 나와 있는 상용 분리막을 쓰자고 생각했고, 구할 수 있는 막을 거의 다 사들여 테스트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막마다 위에 코팅된 선택층의 화학적 특성은 제각각인데, 정작 원유가 걸러지는 성능은 하나같이 비슷했던 겁니다. 여기서 발상이 뒤집혔습니다. 분리를 결정하는 것이 그 ‘얇은 선택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선택층을 아예 걷어내고, 모두가 단순 받침대로만 여기던 값싼 다공성 PAN 막만 써보면 어떨까. 큰 기대 없이 시작한 실험이었지만, 시커먼 원유에서 놀랍도록 맑은 투과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본 순간이 이 연구의 진짜 출발점이 됐습니다. 연구는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됐습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선택층 코팅 없이 다공성 PAN 막만으로 원유 분리가 가능한지 기초적인 가능성 검증에 집중했습니다. 기대를 크게 걸지 않고 시작한 실험이었지만, 시커먼 원유에서 놀랍도록 밝은 투과물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면서 본격적인 연구의 시작점이 됐습니다. 처음 발견부터 원리를 밝혀내게 되기까지는 4년 이상의 집중된 실험 투자가 필요했습니다. |
□ 연구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장애요소는 무엇인지? 어떻게 극복(해결)하였는지?
| 연구에서 가장 도전적이었던 부분은 단연 메커니즘 규명이었습니다. 기존에 없던 방식을 입증하는게 목표였기 때문에, 원유 속 무거운 성분이 막 내부 미세 기공에 자발적으로 침착되어 2 나노미터 이하의 정교한 수송 통로를 스스로 형성한다는 현상을 학술적으로 설득력 있게 입증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이 현상을 뒷받침할 이론적 배경을 찾기 위해 교수님, 동료 연구자들과 수없이 머리를 맞댔고, 기존 분석 방법으로는 확인이 어려워 새로운 실험 방법을 직접 고안하는 과정도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우연한 현상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던 발견을 하나의 명확한 메커니즘으로 정립해 나가는 과정이 이번 연구에서 가장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구간이었습니다. 실마리는 ‘왜 무거운 성분이 상온에서 막 안에 굳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풀렸습니다. 보통이라면 액체 상태일 선형 탄화수소가, 나노미터 크기의 미세 기공 안에서는 녹는점이 크게 낮아져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이는 ‘깁스–톰슨 효과(Gibbs–Thomson effect)’로, 좁은 공간에 갇힌 물질일수록 더 낮은 온도에서도 응고 상태를 유지하는 현상입니다. 저희는 침착층을 깊이별로 분석해 그 주성분이 선형 탄화수소(C17–C33)임을 확인하고, 핵자기공명기법을 통해 이 통로가 우연한 막힘이 아니라 열역학적으로 안정화된 선택적 통로임을 입증했습니다. |
□ 이번 성과, 무엇이 다른가?
| 기존 연구들은 분리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하고 정교한 화학 구조의 선택층을 얹는 방향으로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막일수록 비싸고, 까다롭고, 거친 산업 환경에서 쉽게 손상돼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습니다. 저희는 이 방향을 정반대로 뒤집었습니다. 아무것도 코팅하지 않은, 그동안 그저 받침대로만 쓰이던 값싼 다공성 고분자 막에 원유를 그대로 흘려보낸 것입니다. 솔직히 처음엔 분리가 전혀 안 되고 원유가 그대로 새어 나올 거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시커먼 원유에서 밝고 맑은 투과물이 흘러나오는 순간, 직감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성능 개선이 아니라 ‘정밀 분리에는 반드시 선택층이 필요하다’는 분리막 분야의 오랜 상식 자체를 뒤흔드는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존 방식이 더 정교한 것을 덧붙여 성능을 얻으려 했다면, 저희는 덜어내서 답을 찾았습니다. 값싸고 단순한 막이 오히려 원유 스스로의 힘으로 분리 통로를 만들어내기에, 제조가 쉽고 거친 환경에도 강하며 기존 설비에 바로 끼워 넣을 수 있습니다. 가장 단순한 해법이 가장 강력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성과의 핵심입니다. |
□ 실용화된다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나? 실용화를 위한 과제는?
| 이 기술의 가장 큰 매력은 공장을 새로 짓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거대한 증류탑을 헐어내거나 공정을 멈출 필요 없이, 기존 배관 사이에 분리막 모듈을 끼워 넣기만 하면 됩니다. 공장 입장에서는 부담이 가장 큰 끓이는 단계의 일을 막이 미리 덜어주는 셈입니다. 쓰임새도 원유 정제 한 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나프타를 분해하기 전 원하는 성분만 골라내거나, 파라자일렌·BTX 같은 핵심 석유화학 원료를 분리하고, 고급 윤활기유를 정제하는 공정까지 정유·석유화학 곳곳의 끓여서 나누던 자리에 하나씩 들어갈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맑게 정제하고, 배터리 제조에 쓰인 용매를 회수하며, 친환경 연료를 정제하는 미래 산업으로도 확장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상용화에 대한 과제도 분명합니다. 지금은 막을 작은 크기로 잘라 실험실에서 시험하는 단계입니다. 실제 공장에서 쓰이려면, 수백 배 넓은 대면적 막으로 키우고도 성능이 그대로 유지되는지, 거대한 모듈 형태로 만들었을 때도 오래 안정적으로 버티는지를 증명해야 합니다. 실험실의 가능성을 산업 현장의 신뢰로 바꾸는 일이 앞으로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입니다. |
□ 꼭 이루고 싶은 목표나 후속 연구계획은?
| 가까이는, 이번 연구가 PAN이라는 단 하나의 소재에서 출발한 만큼 이를 다양한 막 소재로 넓히는 일입니다. 이번에 발견한 선택층 없는 다공성 구조와 자발적 기공 수축 현상을, 우연이 아니라 연구자가 원하는대로 설계할 수 있는 단계로 끌어올리고 싶습니다. 막 내부의 기공 크기와 구조를 정밀하게 다듬어, 분리하고 싶은 성분에 맞춰 통로를 빚어내는 맞춤형 분리막을 만드는 것이 다음 목표입니다. 그다음은, 이 기술을 실험실 밖으로 끌어내 원유뿐 아니라 나프타·방향족 분리부터 폐플라스틱 재활용, 배터리 소재 회수까지 정유·석유화학 공정 곳곳에 하나씩 심어 나가는 것입니다.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적은 에너지로 깨끗하게 나누는 기술의 가치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거의 모든 물건의 출발점인 원유를, 끓이지 않고 거르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면, 다가올 에너지 전환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입니다. |
□ 기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 이번 연구의 가장 큰 복병은 ‘냄새’였습니다. 실제 원유는 색이 칠흑같이 검고 냄새가 지독해, 보관 용기 뚜껑을 살짝 열기만 해도 실험실 전체에 냄새가 퍼질 정도였습니다. 원유를 희석해서 연구해온 해외 연구진들과는 다른 접근을 하기 위해, 원유를 ‘있는 그대로’ 다루기 위해서 저희는 사람이 직접 들어가 실험할 수 있는 ‘워크인(walk-in) 후드’를 설치하고, 그 안에서도 얼굴 전체를 덮는 전면형 방독면을 착용한 채 실험을 이어간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습니다. |
| 연구자 소개 |
<고동연, 교신저자>
1. 인적사항
○ 소 속 : KAIST 생명화학공학과
○ 전 화 : 042-350-3913
2. 학력
○ 2007
○ 2007 ~ 2013
3. 경력사항
○ 2014 ~ 2017
○ 2017 ~ 현재
4. 전문분야 정보
○ 분리공학 (분리막 기반 원유 (Crude Oil) 분획 기술 연구)
○ 환경공학 (직접 공기 포집(DAC) 및 탄소 저감 분리 시스템 연구)
○ 인공지능 (베이지안 최적화·자율실험실(Self-Driving Lab) 기반 분리 공정 최적화 연구)
5. 연구지원 정보
○ 2021 ~ 2025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개인기초연구(우수신진연구)
○ 2022 ~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집단연구지원(선도연구센터)
○ 전 화 : 042-350-3940
○ Carnegie Mellon 대학교, 화학공학과 박사
○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학사/석사
○ KAIST ICT 석좌교수 (2023-현재)
○ KAIST 공과대학 학장 (현재)
○ AIChE Fellow (2023 – 현재)
○ ERC 분산형저탄소 수소생산연구센터 Director (현재)
○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2012-2023)
○ 뉴욕시립대 화학공학과 교수 (2001-2012)
○ 에너지 공정시스템, LCA
○ 수소생산 및 이산화탄소 전환
○ 공정집적화 (Process Intensification)
○ 2019
○ 2019 ~ 2021
○ 2021 ~ 2025
○ 2025 ~ 2026
○ 2026 ~ 현재
○ 화학공학 (유기용매 나노여과 분리막 시스템 개발)
○ 고분자공학 (맞춤형 분리막 소재 합성 및 설계)
○ 표면공학 (나노 수준 초박막 코팅 및 구조 제어)
<서혁준, 제1저자>
○ 2018
○ 2018 ~ 2024
○ 2024 ~ 2025
○ 2025 ~ 현재
○ 재료공학 (고분자 및 탄소 분리막 설계 및 기공 특성 제어)
○ 분리공학 (분리막 기반 유기용액 분리공정 개발)